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미조 토우마 (문단 편집) === 사상의 편협성 === ||"넌 언제나 어떠한 사건에 관여하고, 주먹을 이용해 적을 쓰러뜨리고, 그 결과로 누군가의 자그마한 세계를 지켜 왔지. 그 행위가 쌓고 쌓여 제 3차 세계대전의 종전이라는 결과를 지을 수 있었고. 넌 어떠한 영웅 대접을 받았고, 네 인상은 옳은 측면만으로 보여왔어. 이게 지금까지 네가 알고 있던 세상의 이야기지." 슬쩍. 때려박는 게 아닌, 슬그머니 내밀 듯, 오티누스는 속삭였다. "⋯⋯하지만, '견해'를 바꿔 보니 어때? 넌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은 모조리 적의를 드러내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든 여자는 전부 빼앗아가고, 저항하는 자에겐 용서 없이 주먹을 휘둘러 납득시켜 왔어. 이것도 또한, 카미조 토우마라는 사람의 한 측면이겠지. 넌 문제의 해결 수단으로 주먹을 골랐어. 검이나 총에 비하면 애들 장난 같은 것이지만, 그것들이 쌓고 쌓여 제 3차 세계대전의 행방까지 좌우하는 단계에 이르렀지. '''이제 한 나라의 독재자가 받는 정도의 혐오감으론 끝나지 않을 거라고.'''" || >[[가스라이팅|자네가 그렇지 않았다면 학원도시는 이런 형태가 되지 않았겠지. 자네를 용서한 건 자네뿐이다.]] >---- >[[아레이스타 크로울리]] '독선적이고 편협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의견을 내놓은 대표적인 인물이 초전자포 애니판의 감독인 [[나가이 타츠유키]]로, "멋져 보이는 말만 늘어놓을 뿐 상대방 사정 따윈 배려하지 않는다."고 씹은 적이 있다. 실제로 카미조를 자기의 정의만 상대에 강요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인터넷 상에선 많이 있다. 신약 9권에서도 [[오티누스]]가 이 점을 정확히 지적하며, 카미조 토우마라는 존재의 이면은 단지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정당화된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리고 오티누스가 자신의 힘으로 모든 인간이 카미조의 이면만을 보게 되는 세계를 만들자 '''세계는 카미조 토우마를 최악의 악당으로 돌렸다'''. 신약 18권에서는 [[아레이스타]]가 이매진 브레이커의 실험장으로 쓰기 위해 만든 학원도시의 어두운 모습들은 이매진 브레이커를 가진 네가 폭력성으로만 그 힘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며 네가 다른 방식으로 그 힘을 쓸 수 있었다면 학원도시도 좀 더 좋은 곳이 되었을 거다.[* 카미조 토우마가 요리사였다면 요리 도시가 되었을 것이고 운동 선수였다면 체육 도시가 되었을 것이란 뜻이다.] 너를 용서한 건 너 뿐이라고 정신공격을 했다. 창약 2권에서는 [[아이하나 에츠]]가 처음으로 카미조와 얼굴을 마주쳤는데, 아이하나는 카미조를 '''말로는 성선설을 외치면서 주먹의 폭력을 버리지 못하는 어느쪽도 아닌 위선자'''라고 지적하며 서로 엮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일부러 카미조와 연관되는 걸 피해왔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설교씬들은 대다수 그 열혈스러움과 박력을 빼고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카미조: 네가 범인이구나! 멈춰! 왜 이런 짓을 벌이냐? '''너 이게 나쁜 짓이라는 건 알지?''' 이런 방법밖에 없었냐? '''이게 정말 네가 원하는 거냐? 이런 방법으로 이룰 수 있냐?''' >상대방: 윽 찔린다. 간단히 말하면 '''상대의 감정적인 헛점을 정론으로 찌르며 감정에 호소하는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조직간 항쟁에 의한 전투[* 예를 들어 영국에서의 기사파와의 싸움]에서는 설교 자체를 안하고, 자신의 행동에 미혹이 없는 후방의 아쿠아 같은 적이나 비아지오 부조니 같은 진성 악당들은 카미조의 설교 자체가 먹혀들지 않는다. 그저 카미조의 근성과 각오를 나타내는 묘사가 될 뿐이다. 애시당초 카미조의 설교만으로 싸움을 멈추는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끝까지 싸우다 무력화된 적이 차후에 등장할 경우 카미조의 설교가 갱생의 계기가 될 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